[1756호] 2014년 09월 15일 (월) 18:00:56 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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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의 편지] 자유의 나라에서 바라본 인생  
⑪ 프랑스 Universite Catholique de Lyon  
  
  프랑스의 하늘은 참 예쁘다. 프랑스에 오기 전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만 보다 와서 그런지 프랑스의 하늘은 새파란 빛과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으로 나를 홀려 놓는다. 그러나 ‘Ca depend(그때 그때 달라요)’의 나라 프랑스답게 하늘도 변덕이 심하다. 푸른빛이 쏟아질 것 같다가도 비가 내리고,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다시 맑아지기도 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자연현상을 계속 보다보니 우리들의 인생도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인생은 그런 것 같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온지 벌써 7개월째, 7+1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 학기 더 지낼 계획으로 한국을 떠나왔다. 프랑스로의 어학연수를 선택한 이유에는 불문과이니까 불어를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또 한 가지는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서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잘 살 수 있는지, 나의 대외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의 나는 어떨지 궁금했다. 낭만의 나라, 여유의 나라,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 정말 나에게도 낭만, 여유, 자유가 주어질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더욱이 이 유학생활, 인생의 경험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집 나와서 사는 건 서울살이나 타국살이나 매한가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도착한 첫날부터 숙소 찾는 일도 굉장히 어려웠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메뉴를 정하는 데에 먹는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어떤 물을 사먹어야 석회가 많이 없는지 등 사소한 것부터 엄청난 선택의 기로에 섰어야 했다. 오랜 비행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프랑스에 잘 온 건지 고민하며 쉽게 잠들지 못한 채 파리의 첫날밤을 보냈다. 연수 지역인 리옹(Lyon)에 도착한 후에도 모든 결정과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다. 내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는데 나는 그 자유를 쉽게 쓸 수 없었다.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서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날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나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여유가 주어졌다. 한국에서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할 일이 산더미만큼 많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정말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말 그대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힘들었다. 낮잠을 자도, 산책을 해도, 밀린 드라마를 봐도,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도 내 여유는 줄어들지 않았다. 또 다른 의미의 여유로는 기다림이다. 프랑스에서의 웬만한 행정처리는 기본적으로 한 달 정도 걸린다. 급한 성격인 나는 이 기다림이 뼈가 사무치도록 싫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행정처리들이 내 머리 속에서 맴도는데 다 접고 한국으로 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와 여유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나에게서 어느새 낭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낭만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몇 달 전 확신에 차 있던 나는 어디에도 없고, 겁쟁이였고 정신없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유와 여유를 가졌는데도 내 자신 스스로가 자유와 여유를 부정하며 내 이전의 삶보다 더 열악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때 내 인생이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수임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내 자유와 여유를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 썼다. 일기도 쓰고, 블로그도 써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하늘구경도, 강가에서 하는 산책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공부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지난 5개월 동안의 어학연수는 불어를 공부하기 보다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내 인생을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넘쳐나는 자유와 여유 때문에 조금 힘들었지만, 다시 자유와 여유 덕분에 나를 더 알 수 있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단순히 지식 공부를 위한 게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살던 정반대의 곳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진짜의 나를 찾아가는 인생 공부를 할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김도연(문과대 불문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