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50624 최동희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으로 잠시 출국하는 바람에 
약간 늦게 올립니다. 


1.학교생활 및 기숙사생활 
프랑스는 영어도 잘 안통할뿐더러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설령 내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불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하지 못하면 내가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게됩니다. 그래서인지 안이하게 불어를 배울 때보다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던 것 같고요. 
어학원은 기숙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는데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길이 눈에 선할 정도예요. 우리가 살던 곳은 VIEUX LYON으로 리옹내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RHONE강변을 따라 고풍스런 길과 건물이 쭉 이어지고 밤에 보면 더 예쁜 빨간 다리까지..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그림같이 나오는 그런 곳이었죠. 눈부신 햇빛과 정말 맑은 파랑빛의 하늘을 보고있으면 말그대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매년 6월21일에는 프랑스 전지역에서 LA FETE DE LA MUSIQUE가 펼쳐지는데 리옹에서도 대대적으로 열린다. 그 날 온 리옹 시민들과 뒤섞여 리옹 곳곳을 밤늦게까지 걸어다니며 구경도 하고 밴드들의 노래도 듣고 춤도 따라해보고 즐거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낼 수록 리옹에 익숙해지고 물건을 살때나 음식을 주문할 때, 기차표를 살 때 우체국에 갔을 때 어떻게 야 하는지 자연스레 배우게 됩니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하는 불어 수업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험도 자주 있고 과제도 꽤있으며 순발력을 요구하는 수업시간내의 내용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배워도 이해가 잘 안되던 불어 문법이나 작문 같은 것이 매일매일 하다보니 익숙해져 가고 듣기등도 체계적으로 하다보니 아무래도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프랑스에 갔으면 불어만 쓰고 프랑스 사람하고만 말해야 한다고 한다지만 매일매일 불어수업이 주는 스트레스를 그나마 같이 간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풀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친구들이 없었으면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을 것도 같네요^^. 수업시간에는 아무래도 말하기를 좋아하고 개성이 강한 유럽 쪽 학생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인데요. 그들은 선생님이 시키면 입을 여는 동양 쪽 학생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눅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문법이나 글쓰기 쪽은 우리가 낫기 때문에 공연히 기가 눌려있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좀 더 유창하게 말하는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될 것 같습니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자주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쉬는 시간이나 PARTAGE TA CULTURE 라는 학생자치 프로그램등을 통해 세계 각국의 문화를 알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특히 학생회 자체 프로그램으로 단체 아비뇽 관광이나 문화 교류 프로그램등이 종종 있는데 저렴한 가격에 좋은 구경을 할 수도 있고 저는 도착초기에 리옹 시내 안내도 받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밖에 사무실에 문의하면 도움이 될만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을거예요.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가끔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들 조차 한국전쟁 후에 아직도 우리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는 국가 쯤으로 대강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가 났지만 차근차근 그렇지 않다고 설명도 하고 이제는 일본에 준하는 경제대국 이라고 말할 때는 자부심도 있었죠. 그들은 많은 이들이 삼성 휴대폰과 LG의 가전제품을 쓰면서도 그것이 한국 제품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약간의 서러움도 있었지만 뿌듯하기도 했어요. 
도착 초기에는 정말이지 심란하고 불안한 마음이 꽤 큽니다.그런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위안 그 자체였어요. 물론 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겠지만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상황을 가진 친구들과의 시간은 지금도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과도 같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늦은 밤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각자 챙겨온 라면등을 나누어 먹고, 집에 가고 싶다, 누가 보고 싶다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그야말로 편한 차림으로 편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마음 깊이 다가 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착 초기의 추위와 두려움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습니다. 해외파견연수가 주는 또하나의 장점이라고 할수있겠죠.^^ 

2. 부활절 휴가와 연수 막바지.. 

4월말에서 5월 초까지 약 3주정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부활절 휴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름방학이 되어야지만 여행을 갈수 있지만 이때 가는 여행은 날씨도 여행하기에 딱 좋고 성수기가 아니라서 여유로이 돌아볼수도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유럽에 있을 때 가까운 터키를 갔었는데요. 친한 정원언니와 둘이 떠났었는데 이슬람 문화에 익숙치 않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다녀와서 각자 여행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면서 서로 찍어온 사진도 보고 재미있는 휴가였습니다. 학기 중에 지칠만 할 때쯤 연휴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즐겁고 이후의 수업에 더 집중할수도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아마도 가장 휴가가 많은 국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공서나 일반 상점들이 걸핏하면 문을 닫고 쉬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소비자로서 생활하기가 매우 불편했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런 것을 문화적인 차이로 받아들이고 우리도 선진국으로 갈 수록 휴가가 늘어나기 때문에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는 기회였습니다 . 
6월달에 집중 수업을 한 달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리옹의 생활에 적응도 꽤 된 상태였고 여기저기 가고싶은 곳도 많고 일단 날이 너무 더워져서 공부하기가 상당히 힘이 들었었죠. 7월달에 있는 델프시험에 대한 압박도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6월에 한달을 쉬게 되면 아무래도 불어를 덜 쓰게 되고 시험을 따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업을 계속 듣는 편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6월말에 학기를 전부 종강하고 한 반 친구들과 종강 파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교환하고 꽤 정이 들었었는데 느끼는 아쉬움도 컸죠. 
객지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더욱더 큰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어느덧 마지막 달인 7월이 되었을 때 , 즐거웠던 날 만큼 힘들고 외로웠던 적도 많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쁨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제 좀 지낼 만하고 더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데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특히 친하게 지냈던 네명의 친구들과 리옹의 찜통더위를 피해 몽블랑 산이 만년설을 자랑하는 샤모니로 여행도 다녀오고 여름이면 들썩한 대세일 기간을 맞아 쇼핑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기도 하고 가장 바쁘면서도 즐거움으로 꽉 찬 7월이었습니다. 

단순히 유학을 했던 것이 아니라 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볼만한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있다보면 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과거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계획과 고민등을 혼자서 천천히 상념할 수 있습니다. 리옹에 가지 않았다면 변화없는 단조로운 생활로 더욱더 안이하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리옹에 다녀와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세계가 얼마나 넓고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지, 여기에는 차마 다 쓸 수 없는 경험들이 날마다 이어지기 때문에 다녀와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리옹 카톨릭 1기 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앞으로도 우리 후배들이 더 좋은 교류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며 이 작은 수기가 그런 생활을 준비하는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앞의 친구들이 이미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도움말을 많이 이야기했고 저는 제가 겪은 생활위주로 썼기때문에 나름 그곳에서의 생활을 그려보는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